레이슌레이 소설 샘플

2020. 1.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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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레이 소설 샘플

2019. 4. 2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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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슌 소설본 샘플

2017. 1. 2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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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me

2016. 8. 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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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갑골이 공허하게 욱신거렸다. 날개가 자라났어야 할 자리였다. 있을 리 없는 것에 대한 통증은 현실보다 선명하다.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아픈 곳에 손을 가져가다 헛된 일임을 깨닫고 얼굴을 찌푸렸다. 날개란 힘의 증표. 나약했던 탓에 날 때부터 가진 적 없는 것을 그는 얼마나 열망했던가. 그러나 수 세기를 살아오면서도 날개는 돋아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주제에 날개가 실재해 꺾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걸핏하면 아파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것이 날개가 돋아나기 위해 감내해야 할 통증인 줄 알았다. 실은 자신의 살갗 아래 날개가 뿌리내리고 있어서, 자라나며 조금씩 강해지면 번데기를 거친 나비가 우화하듯 날개를 펼칠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것은 환상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것도 본래 갖고 있다 잃은 부분에 대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통증이라는 점에서 더욱 고약하다.

  통각이 날을 세울 때마다 청년은 약자라 핍박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다. 여전히 완전한 강자는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도 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얼마나 비참했던가. 약자로 살아온 날이 길어 나약한 태생을 증명하는 다른 것엔 이미 체념한 청년이었다. 다만 날개에는, 그에 얽힌 환상통에만은 유독 비참해졌다. 하필 날개에 집착하는 것은 청년이 오래도록 동경했던 자 때문이었다. 청년은 어릴 적부터 그의 날개를 보며 자랐다.

  강자라는 이름에 너무도 들어맞는 자였다. 그가 활약했던 시대는 혼란스럽고 위태로웠지만 그 어떤 위험도 그 앞에선 무의미했다. 그가 나서면 어떤 적이라도 허망하게 쓰러졌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적을 찢는 모습은 사신을 닮아있었으나, 동작은 간결하고 깔끔했다. 압도적인 힘을 마음껏 쏟아내면서도 으스대지 않는다. 적을 농락하지 않고 단번에 숨통을 끊는다. 당시엔 어린 소년이었던 청년은 그 모습을 동경해 하나하나 기억에 담았다.

  강자란 이름에 걸맞게 그의 날개는 여러 동족 중에서도 눈에 띄게 컸다. 힘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에,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반면, 강함이 곧 질서가 되는 세상에서 날개도 가지지 못한 소년 따위는 영원히 짓밟힐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다만 세상에 하나, 소년이 동경하는 자만은 언제나 소년을 감쌌다. 피를 나눈 형제여서 그랬다. 형님.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임에 소년은 만족했다.

  자라날수록 형은 강해졌으나 동생은 변함없이 나약했다. 동생은 형의 뒷모습을 보며, 아름답게 펼쳐진 날개를 보며 언젠가는 그와 대등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랐다. 자꾸만 형의 발목을 잡는 나약한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았다. 강자를 위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자신 또한 강자가 되는 쪽이 형제에게 좋았다. 그래서 동생은 자꾸만 날개가 자라나는 상상을 했다. 어느 날 일어나면 몸에서 힘이 샘솟고 동족의 다른 이들처럼 작게나마 날개가 돋아나길 바랐다. 형만큼 커다란 것은 아니어도 날개가 돋아나기만 한다면 쓸모없는 것이라며 배척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 믿고서.

  아마 그때부터, 공허한 통증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라나는 일 없는 날개가 뜯기기라도 한 듯 찾아드는 욱신거림이. 그 끝에 남는 것은 날개도 희망도 아닌 비참함뿐임을, 청년은 이제야 안다. 수 세기를 당하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따라서 언젠가는 날개가 돋아나게 되리라는 헛된 희망은 버렸다. 자신은 날 때부터 날개 따위 가질 수 없는 약한 존재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차라리 청년은 다른 것을 믿기로 했다. 그가 손에 쥐고 바로 휘두를 수 있는 실제의 힘.

  이제 세상에 동족은 거의 남지 않았다. 남은 이들에게서도 과거의 영광은 찾을 수 없다. 강자는 이미 사라지고 약한 것들만 남아버린 탓이다. 힘을 얻은 청년이 다스리게 된 이들 중에 날개를 가진 이는 없었다. 약자들의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그나마 힘을 가진 자일 터. 청년은 약자 속의 강자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과거처럼 청년을 무시할 수 없다. 그가 휘두르는 힘은 살아남은 동족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건 물론이고 평화에 익숙해져 느슨해진 적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형에게 방해가 되기는커녕 형과 대등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

  형님. 어려서부터 동경했던 존재. 청년에게 언제나 최고의 강자로 남은 자.

  그는 지금 청년의 손에 있었다. 본디 몸담은 곳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아군도 괴멸당해 갈 곳이 없어진 그를 청년이 거둔 것이다. 강자의 이름에 걸맞은 커다란 날개는 그대로였으나 몸은 만신창이에 기댈 곳도 없다. 전장을 누비던 강자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는 약자가 되었음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세상을 위협한 청년의 공격 속에서 목숨을 건진 것은 다행이었으나 그조차 형이 쓰러지지 않도록 청년이 교묘하게 그를 감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자신의 표적이 된 이들이 쓰러지든 찢겨나가든 청년은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하나, 어느새 적의 편에 서게 된 형뿐. 그만은 타인이 해하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살펴 자신이 확보해야만 했다. 그토록 동경한 존재를 타인의 손이 더럽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덕분에 동료를 전부 잃고도 그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한 세력을 감히 적대하고 나선 그는 과거 약자라 경멸받은 동생의 손에 산 셈이다. 형의 구원자가 된 것에, 그리고 형을 지킬 힘을 갖게 된 것에 청년은 만족했다.

  그러나 동생의 손에 목숨을 건진 형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동생을 만난 것에는 안도했으나, 그뿐. 돌아갈 곳도 동지도 사라진 세상은 그를 하루하루 닳게 했다. 시선은 자꾸만 방황했고 눈은 빛을 잃었으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황폐해진 세상을 바라볼 때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동생에게 짓밟힌 세상을 꽤 사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청년이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청년이 아는 형은 본디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세상이 무너졌다는 절망과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 따위가 그를 오래 잠식할 리 없었다. 곧 그는 세상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폐허 위에 건설될 새로운 세상에서 동생과 함께, 예전처럼. 청년의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예전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리라. 그런 날을 어려서부터 얼마나 꿈꿔왔던가. 그 날을 위해 형이 다시 힘을 차릴 수 있도록 돌보는 것쯤은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아, 형님. 나의 형님.

  사랑하는 이를 부르는 이름은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형을 생각하며 청년은 불쾌한 통증을 떨쳐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 때문에 생기는 통증보다 사랑하는 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급했기에. 지금은 날개 없이도 형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지닌 그를 돌볼 수 있었다. 그러니 통증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형을 하루라도 빨리 절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 청년의 통각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

 

  사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절망에 무너진 때는 오래 전, 그가 섬기던 이로부터 배신당했을 때였다. 상대는 무엇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자였다. 그러나 한순간에 가장 소중한 이들을 앗아갈 줄이야. 그는 절망에 휩싸여, 섬기던 이에게 무기를 향했다. 모든 힘을 끌어내고도 힘의 격차를 극복할 수 없어 최후의 공격을 마치고 쓰러진 때 사내는 자신이 그동안 기를 쓰고 쌓아온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았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고, 오랜 시간이 흘러 깨어나 미처 쓰러트리지 못한 과거의 적에 맞설 기회가 생겼다. 과거의 주인은 복수의 대상이 되었고, 과거의 동지는 세상을 위해 무찔러야 할 악이 되었다. 과거 악에 속아 그 이름으로 싸웠던 사내는 선의 편으로 돌아섰다. 과거의 오점 때문에 사내에게는 언제나 오명이 따라붙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군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좋았다. 옛 동지에게 비웃음을 사도 좋았다. 그저,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세상을 위해 싸우고 싶었다. 옛 주인의 명령으로 쓰러진 소중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복수를 마치고 싶었다.

  사내는 후회를 결의로 바꿔 싸웠고, 세상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그 노력을 인정했는지, 처음에는 그의 과거 때문에 그를 꺼리던 동료들도 조금씩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세상을 완전히 잠식할 것만 같았던 적도 용감하게 덤벼드는 아군에 세력을 많이 잃었다. 언젠가는 바람대로 복수를 마치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을 하나씩 쓰러트리며 사내는 서서히 그런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두 번째 절망이 그를 덮치기 전까지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사내는 익숙한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를 찾을 이라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다. 승자이면서도 패자를 굳이 구해내 목숨을 부지시키고 있는 자. 오래지 않아 방문이 열리고 그의 하나뿐인 동생이 들어왔다. 사내는 동생의 웃음 띤 얼굴을 본다. 주인에게 배반당하고부터는 영영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것이었다. 옛 주인이 짓밟은 소중한 이 중 하나가 바로 동생이었으니까.

  과거 그가 살았던 세상은 힘이 곧 질서가 되는 세상이었다. 강자의 세상에서 약자란 무가치한 존재. 운 나쁘게 약하게 태어난 것들은 세상에 제대로 섞여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핍박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행히 사내는 아비의 강한 힘을 그대로 물려받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로 살아갈 수 있었으나 약자로 태어난 동생은 달랐다.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언제 누구에게 위협받을지 모를 동생을 지키려 사내는 단단히 무장하고 동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만일 여기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면, 힘의 유무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동생 같은 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내의 그런 생각에 답을 제시한 자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부패한 세상을 부숴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자. 사내는 그의 신념에 매료되어 충성을 바치고 그를 위해 싸웠다. 사내를 거둔 주인 역시 여러 수하 중에서도 사내를 특히 아껴, 자신의 이상향에 그 가족까지 허락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상향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온 사내는 어느 날 가족이 주인의 명령으로 공격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배신감에 주인에게 덤벼들었다 쓰러지고 수백 년, 다시 깨어난 사내는 지키지 못한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심으로 옛 동지들에 맞서 싸워왔다. 사내에게 동생은 언제나 후회와 함께 떠오르는 존재였고 수백 년 전에 잃은 사람이었다. 그 동생이 지금껏 살아남아 적으로 자신을 가로막게 될 줄이야. 적이 된 동생과 마주한 사내가 경악했을 때 동생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형님은 내가 살아있길 바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랬다. 살아있길 바랐다. 수백 년 전, 죽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혹시 살아있다면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적으로 만나길 바라지는 않았다. 동생을 적대해야 한다는 비극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라 동생이 몸담은 곳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힘을 얻어 우뚝 설 수 있게 된 동생이 자신처럼 이용당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죄를 쌓고 후회하는 것은 자신에서 그쳐야 했다.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는, 동생을 적에게서 구해내는 것으로 갚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동생은 그의 설득에도 돌아서지 않았으며 도리어 아군을 공격해왔다. 힘을 얻은 동생은 과거 자신이 감싸야 했던 약한 것이 아니라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는 무자비한 포식자였다. 허망하게 쓰러지는 아군과 순식간에 무너지는 세상. 그 속에서 사내는 수 세기 전의 지옥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동생을 막으려 했으나 돌아온 것은 깊은 부상뿐. 결국 사내는 동생을 막지도, 동료들과 함께 쓰러지지도 못하고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동생의 손에 들어갔다. 사내가 두 번째로 절망에 무너진 날이었다.

  “잘 지냈어?”

  동생의 목소리에 사내는 동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앉아있는 자신에게 시선을 맞추려, 동생은 한껏 몸을 숙이고 있었다. 사내는 훈련받은 짐승처럼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회복해야지.”

  “회복하면?”

  평소엔 얌전히 말을 듣고만 있었던 형이 뜻밖에 말을 꺼내자 동생의 눈이 커졌다. 답할 말을 미처 고르지 못한 동생에게 형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회복하면 무엇이 기다려?”

  이미 모든 것을 잃고 만 자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아군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몸을 의탁할 곳도 없다. 재기를 노리기엔 그가 놓인 세상은 너무도 황량했다.

  “우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고, 나와 함께할 수도 있겠지. 주군이 형님을 용서하기만 한다면.”

  “틀렸어, 데미안. 배신자가 돌아갈 곳은 없고, 돌아갈 곳이 있다 한들 돌아가지도 않을 거야.”

  “내 옆에 서고픈 생각은 없었어?”

  동생의 목소리는 은근하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안겨들던 어린 것을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유혹적인.

  “나는 그런 날을 수백 년간 꿈꿔왔는데, 형님은 아니었어?”

  “바라지 않은 건 아니었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야.”

  “이런 방식이 뭐가 잘못되었지?”

  이번에는 사내가 침묵했다. 동생의 창백한 얼굴에 걸린 복잡한 감정을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형님, 나는 군단장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형님과 대등하게 선 적이 없었어. 형님의 세상과 내 세상은 언제나 분리되어 있었지. 저 아래에서, 나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곳을 올려다보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아?”

  “데미안.”

  “형님은 누구든 당연히 누려야 할 것도 허락받지 못하는 삶을 겪어본 적 없겠지.”

  그 참혹한 삶에서 자신을 구한 것은 언제나 자신을 감싸던 형이 아니었다. 새로이 두르게 된 힘과 주인에게 부여받은 지위가 그를 건져냈다. 수하를 이끌고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짓밟는 자를 세상은 다시는 무시하지 못했다. 소년기를 핍박받고 권리도 빼앗기며 보냈던 자에게 그것은 얼마나 달콤한 구원이었는가. 자신에게 살 길을 열어준 것을 버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것만은 자신을 아껴주었던 형조차 이해하지 못할 영역이리라.

  “이제야 대등하게 설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자는 언제나 달콤한 것을 약속하지. 하지만 그 끝에 기다리는 결말은.”

  “배신이라고? 아니면 파멸이라고?”

  동생은 팔짱을 끼며 웃었다. 멈칫한 것은 형 쪽이었다.

  “그러면 어때. 가장 바라던 것은 분명히 실현시켜주는데. 결말 따위를 왜 지금 생각해야 하지?”

  두 사람의 갈증의 깊이는 달랐다. 과거 사내가 옛 주인에게 충성을 바쳤을 때의 간절함과 동생이 주인을 섬기며 품은 간절함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도록 너무 깊은 갈증에 시달려온 동생에겐 바닷물이라도 간절할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그 순간 사내는 동생이 얼마나 끔찍한 불행을 안고 살아왔는지 겨우 깨달았다.

  “기대해, 형님. 나는 반드시 형님을 내 곁에 세울 거야. 그게 내 소망의 완성이니까.”

  동생은 형의 품에 무너지며 말했다. 귓속에 파고드는 목소리는 소년의 것처럼 들떠있어서, 사내는 수백 년 전의 어린 소년을 생각하며 청년이 된 동생을 감쌀 수밖에 없었다.

 

*

 

  형을 정성껏 돌보고 달래면, 언젠가는 자신을 돌아보리라고 생각했다. 피를 나눈 형제이니만큼 결국은 뜻을 꺾고 함께하리라 믿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좋았다. 오랜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 그렇게 되리라고 자신만만했던 청년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참담했다. 청년은 굳은 얼굴로 형에게로 향했다.

  거의 회복된 몸으로 배신을 꾀했다고 한다. 동생의 군을 뒤집어엎은 후 동생을 데리고 탈출하려 했던 것이 그의 계획. 하나부터 열까지 동생의 바람과 노력에 완전히 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였건만 돌아오는 답은 결국 그것이었다. 아무리 형이라도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없었다. 다행히 단신으로 다수와 싸운 데다 몸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라 도중에 제압당했다고 했다. 청년은 문을 열고 죄인과 마주한다.

  “한 가지만 말해줘. 왜 그랬어?”

  가라앉은 목소리는 낯설다. 사내는 동생이 감정을 눌러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말해주면 대답에 따라 판단할게. 어떤 답이든 형님을 포기하진 않을 거지만.”

  “너를 구하고 싶었어.”

  “어디에서? 아니면 누구에게서?”

  “그야, 그 자의 소굴에서지.”

  동생의 절박함을 모르지 않았으나, 동생이 나락으로 걸어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동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지금 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구원처럼 찾아들어도 언젠가는 오히려 동생의 목을 조여들 터. 동생이 지배하는 곳에서 감히 동생의 뜻을 거스른 것은,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 자의 수하로서만 함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모든 걸 내려놓고, 우리 둘만이 지낸다면.”

  “함께할 테니 모든 것을 포기해달라? 날더러 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을 전부 포기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 속에 몸을 던지란 말인가?”

  청년은 형을 바라보았다. 붉은 눈에 간절함이 비치는 듯했다.

  “그건 못 해.”

  그러나 청년은 형의 소망을 끊어냈다. 사랑하는 자의 간원이라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아군이 거의 잠식한 세상에서 그렇게 도망자가 되어서야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열망한 행복을, 형의 소망을 위해 양보하고 싶지도 않았다. 냉담한 거절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형은 한동안 멍하니 동생을 바라보다가 돌아서 달렸다.

  “혼자서라도 도망치려고?”

  동생은 그를 뒤쫓았다. 그 바깥은 자신이 지배하지 않는 곳. 배신자인 형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함께하기로 했잖아. 바깥엔 아무것도 없어. 형이 기댈 곳도, 형을 받아줄 사람도.”

  폐허에서 무엇을 건질 수 있단 말인가.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사내라도 그곳에서 희망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 좋게 추적당하지 않는다 해도, 잔해를 뒤적이다 소득 없이 무너질 것이 뻔했다.

  “나를 꺾어 형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해주어도 형은 멈추는 일이 없다. 동생의 말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발악하려는 것처럼. 계속되는 도주에 어느새 그가 닿은 곳은 탑의 꼭대기층. 조금 더 달리면 옷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얼마 되지도 않는 형제간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사내는 마침내 자신이 갈 수 있는 종착지에 닿았다. 탑의 난간. 그 아래는 아득한 지상.

  “나는 형님을 포기하지 않아.”

  물러설 곳이 없어 결국 멈춰버린 형에게로 동생은 천천히 다가섰다. 수백 년을 잊은 적 없이 품은 사람이었고, 수백 년간 함께할 날만을 생각한 사람이었다. 형이 벌인 일에 대한 배신감도 시간이 지나면 삭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저항을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기만 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

  “물론, 형님이 여기서 다시 내 손을 잡기만 한다면.”

  “틀렸어, 데미안. 이미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어.”

  사내는 쓰게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더 이상 물러서지도 못할 곳에서. 당연히 그는 난간에 등을 부딪쳤고, 그 반동 때문인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떨어졌다. 청년은 급히 손을 뻗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본래라면 펴져 날갯짓해야 할 사내의 날개마저 잠잠했다. 순식간에 사내는 추락했다. 날개를 갖지 못한 보통의 인간처럼. 오래지 않아 파열음이 귀를 때렸지만 청년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산산이 부서진 형을 차마 눈에 새길 수 없었던 탓이다.


*

 

  형이 죽은 후 청년은 수 세기를 이어온 성가신 통증에 더욱 자주 시달리게 되었다. 자라나지도 않은 날개가 욱신거리는 통증. 걸핏하면 밀려오는 통증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여 청년을 자꾸만 괴롭혔다. 통증 때문에 새벽에 깨어난 어느 날, 청년은 얼굴을 찌푸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날개가 있었다. 형의 것처럼 거대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았으나 살갗을 뚫고 자라난 것은 분명히 그가 갈망하던 날개였다.

  자라날 리 없다고 오래 전에 포기한 것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막상 날개가 돋아나자 청년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것의 통증으로 비참해질 이유가 없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나 나날이 날개는 자라났으므로, 성장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여기면 그만이었다. 늦된 날개를 청년은 자주 어루만졌다. 바라마지않던 힘의 증표. 그것을 인식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이 보상받은 것 같기도 했다.

  왜 그것이 형이 죽은 후에야 자라났던가. 형 앞에 보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때 날개가 자라났다면, 자신이 이젠 홀로 우뚝 설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을 것을. 자신이 형을 지킬 수 있다고, 제 힘으로 둘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을.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미 지난 일. 청년은 자라나는 날개를 보며 형의 날개를 생각했다. 날개가 자라면 자랄수록 청년은 자신에게서 죽은 형을 겹쳐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강자이자 수백 년을 동경해온 자를.

  형님, 나는 형님을 닮아가고 있어.

  거울을 보며 청년은 소리 없이 속삭였다. 이미 죽은 이에게, 죽었음에도 마음 한쪽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자에게. 형님처럼 힘을 갖고, 수하를 가지고, 이제는 형님과 같은 날개도 가지고 있지. 실제로 그는 점점 더 형을 닮아가고 있었다. 과거의 형과 거의 대등한 힘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처음에는 작고 볼품없던 날개까지 형의 것처럼 근사해지고 있었다. 다만 그의 날개는 검보라색을 띠는 형의 것과 다르게 무색투명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잘못 손대면 찢길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것이 청년의 유일한 불만이었다.

  어느 날 새벽, 청년은 지독한 통증에 깨어났다. 몸을 일으켜 습관적으로 유리에 몸을 비추니, 전날과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정도로 한참이나 자라난 날개가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 날개는 이제 기억 속 형의 날개보다도 컸다. , 이제야. 청년의 얼굴에 희열이 드리워졌다. 이제야 넘어섰어. 대등한 것으로도 모자라 형을 뛰어넘게 된 거야. 동경하던 자를 넘어서게 되는 것만큼 기쁜 것이 있을까. 환희에 휩싸여 청년은 빠르게 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라면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어린 시절 청년은 형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것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비행은 그 어떤 새보다도, 신화 속 어떤 요정들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날개가 없어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것을 이제 자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형이 날았던 하늘을, 스스로 나는 것이다. . 형님. 난간에 서며 청년은 웃었다. 이제 여기서 날기만 하면, 완전해진다. 언제나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형처럼.

  자, 어서. 하늘로.

  청년은 발을 뗐다.

  형님이 날았던 곳으로.

  그의 거대한 날개는 막,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다.

  허공에 몸을 던지자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아니, 펼쳐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빛 아래에 비치는 것은 어째서인지 날개 없이 태어난 청년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동안 착실하게 자라난 날개가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공에서 청년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눈에 담기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까마득한 저 아래의 풍경.

  비행은 짧았다. 몇 초간이었다.

  청년은 그대로 지상에 추락했다. 형과 같은 종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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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데슬] 재회 (To. 마론님)  (0) 2015.04.04
Posted by 현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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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주 일요일에, 6월 1일 케이크스퀘어에서 배포된 전단지를 가져온 이후 내내 기다리던 행사가 열렸습니다. 몇 달간의 기다림은 길었지만 또 두근거리기도 해서, 행사 한 달 전쯤부터 인포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자 나오는 족족 살피며 즐거워했죠. 지방에서 올라가는지라 고된 일정이 될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걸 감수할 만큼 충분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행사 당일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꽤 먼 곳에 사는지라, 아침 일찍부터 출발해야 했습니다. 짐은 이미 행사 전날인 토요일에 챙겼고, 저는 1시간쯤 겨우 눈을 붙이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준비해선 지하철 두번째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여유를 너무 많이 잡아버린 터라 터미널에서도 꽤 기다리다가, 6시 40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일정이라 꽤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차 안에서 편히 잘 수 있기에 눈을 감고 얼마간 쉬었죠. 그런데 출발한 지 시간이 좀 흘렀을 때, 휴게소에 들르느라 잠이 잠깐 깬 때부터 급작스레 몸이 안 좋더군요. 그 이후로는 도착할 때까지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통제를 벗어난 몸으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다행히 늦지는 않게 도착했고요.


  터미널에서 내려서는 그래도 좀 사정이 나았습니다. 조금 쉬고 지하철을 타고는 바로 행사장으로 향했죠. 지하철에 탄 게 10시 40분 정도였습니다. 아침의 9호선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축 늘어진 몸으로도 편히 갈 수 있었습니다. 본래는 발산역에서 내려 걷는 경로를 생각했지만 몸상태가 너무 나빠서 환승하지 않고 걷지도 않는, 염창역을 통한 경로를 택했습니다. 처음 택하는 경로였지만 다행히 버스도 빨리 왔고, 빠르고 편하게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일반입장 시간보다 30분 가량 일찍 왔음에도, 여느 행사처럼 긴 줄이 보였습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줄 제일 끝에 가서 기다렸지요. 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줄어들었고, 서로 충돌한다거나 다툼이 벌어진다거나 하는 혼란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평화롭게 줄 서서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 행사장에 들어설 때부터 사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근처에서 종교 관련 행사라도 있었는지, 거기서 나온 분들이 사람이 모인 걸 궁금해하며 행사장을 기웃거리는 건 당황스러웠지만요. 다행히 위에서 비치는 내부의 모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워, 이내 관심을 거두고 다 가신 것 같았습니다.



  행사장에 들어선 것은 12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일찍 들어섰던 것 같네요. 트위터에서 미리 고지되었던 대로 전프레인 프람 종이가방을 받았고, 들어서서는 얼마간 행사장의 구조를 대충 눈으로 훑고는 1, 2차 홍보전단지와 1월에 있는 아이에바 온리전의 전단 엽서, 2월에 있는 아바타 온리전의 전단 엽서를 챙겼습니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부스를 돌아보기 시작했죠. 죽음 열부터 기억 열까지. 인포를 보고 예약한 것과 수량조사에 참여했던 것부터 찾거나 샀습니다. 회지는 이내 프람 종이가방에 차곡차곡 쌓였죠. 다행히도 제가 봐둔 것은 매진되기 전에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번 흑역사 때의 악몽 ─ 늦게 도착해서 죄다 매진되었던 ─ 은 다시 겪지 않았지요. 옹기종기 모인 부스에 전시된 회지나 굿즈는 제각기 매력적이어서, 갔던 곳도 계속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지 않았던 것도 사고, 또 즐거워하며 잠시 앉아서 회지를 정리하기도 했어요. 아픈 몸으로 혼자 돌아다녀도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머리를 친 것이, 35분쯤에 갑자기 방송으로 흘러나온 트레카 매진 소식이었습니다. 언라덕의 구매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마는, 그래도 행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매진되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엣? 하고 돌아보니 이미 모든 건 끝난 후였고요. 트레카는 조금 있다가 사야지, 하고 줄도 서지 않았던 터라 더 놀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부스를 돌 때쯤 몇몇 분들은 이미 부스에다 트레카를 쌓아둔 상태였지만 몇몇 분은 아예 부스를 지키느라 사러가지 못했는지 부스에서도 놀란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당황스럽다 해도 이미 지난 일. 이번에도 트레카는 글렀구나. 하는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인 분들이 좀 있었는지 트레카 판매처에서는 트레카 전종을 전시해놓은 것을 찍어가곤 하더군요. 저도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도 행사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고 기대한 것은 트레카만이 아니었기에, 저는 이내 다시 행사장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부스 수가 많다보니 혹여 제가 놓친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갔던 곳을 다시 가고 또 다시 가고 했는데도, 나중에 집에 와서 통판글을 살피니 못 본 부스가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집요하게 돌아본 탓에 생각지 못했던 좋은 회지를 또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력이 떨어진 상황이라 오래 보는 건 무리여서 그러다가도 종종 쉬었습니다. 또, 회지를 어느 정도 산 후에는 벽에 당당히 걸려있던 등신대와 이벤트 상품에도 눈을 돌렸죠.









 행사의 꽃은 등신대라고 하죠! 실루엣이야 행사 전에 이미 본 저였지만 실물로 보는 건 또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들의 첫 전사, 스타팅 캐릭터를 비롯한 상점캐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미를 자랑하시는 그분과 놀라운 스피드의 탐정님, 해맑은 교관님과 과거 (오역 때문에) 탄산수에 부채질을 하셨던 에이스님, 무서운 득표수를 보였던 아수라와 상대를 철저히 파괴시키는 로쏘가 보이더군요. 사진을 찍는 분들에 섞여 저도 사진을 남겼습니다. 덕분에 행사가 끝나고도 멋진 전사들의 사진은 남아있네요.



 그리고 이벤트 상품으로 주어진다는 레지먼트 족자봉과 여캐 족자봉, 판매된다는 브라우 족자봉까지. 급히 찍는다고 선명하게 남기지 못한 게 아쉽네요. 각각 주인을 만나 소중히 보관되고 있겠지요. 중간에 행사장을 나서서 그 과정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또, 행사장에 글리터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요. 한참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슬쩍 기웃거렸습니다. 마테리얼과 군번줄, 클리어파일 등의 공식 굿즈가 눈에 띄었습니다. 쉐리 피규어도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고요. 굿즈가 인기가 좋았던지, 좀 더 행사장을 돌다가 다시 와보니 몇은 이미 매진되었더라고요.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글리터 쪽에서 지원도 해주고 또 행사장 내 부스까지 내어 더욱 좋았습니다. 


 얼추 계획대로 수행한 건 1시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멀리서 왔는데 아쉽기도 하고, 종이가방에 질서 없이 넣은 회지를 정리하고 싶기도 해서 자리에 앉아 회지를 하나하나 봉투에 담고 제 나름의 기준대로 정리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게 없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돌아다녔지요. 사실 몸상태가 계속 걸림돌이 되어서 ─ 몇 번 토하고, 몸살기운이 있었으며, 기력이 없었습니다 ─ 어차피 오래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있는 것은 무리였죠. 그렇기에 그렇게 마지막으로 돌아본 것을 끝으로, 이벤트엔 참여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행사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웠든지 혹은 몸이 조금만 나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묵직한 종이가방을 든 채 아쉬움을 누르며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탔습니다. 행사장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회지가 그득한 가방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터미널에 도착하고도 버스 표는 금세 매진되어 한시간쯤 기다려 겨우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지요. 그러고는 피로한 몸을 기대고 계속 잤습니다. 4시간쯤 걸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고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지하철 몇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8시 반. 출발한 지 대략 15시간만이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또 종이가방을 계속 들고 있었던 터라 팔도 아팠습니다. 짐을 풀어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도 피로는 쉬이 풀리지 않더군요. 그래도 오래도록 기다리던 행사에 다녀와 정말 기뻤습니다. 혼란도 없었고 통제도 적절히 이루어져, 모처럼 행사 자체에 지치지 않은 행사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워, 무리한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네요.  




 리라이트에서 구한 것들입니다! 프람 종이가방이 생각보다 튼튼하더군요. 회지를 제법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랫부분이 무게 때문에 좀 구겨졌을 뿐 전혀 찢어지지 않아서 구겨져선 안 될 회지들을 안전하게 잘 챙겨올 수 있었습니다. 행사에서 이렇게 많이 질러본 것도 처음인 것 같아요. 행사장에서 앉아서 혹은 집에 와서 읽어보니 또 각기 만족스럽더라고요. 즐거운 행사였습니다. 개인적인 부담 ─ 몸상태나 거리 등 ─ 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걸 감수할 가치가 있었고 또 계속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 행사였어요. 


 행사 주최하신 분들, 행사장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 협력해주신 분들, 또 부스에서 저렇게 좋은 회지와 굿즈를 내주신 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만족스러운 행사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현소야 :